성형 권하는 사회

얼마 전 한 방송에서 일본 출신 아이돌 하나가 성형 광고를 금지할 필요가 있다고 한 발언이 화제가 되었다. 성형수술 자체를 반대한다기보다는 성형 광고를 규제할 필요성을 제기한다는 점, 그리고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의 기준이 획일화되는 것을 문제점으로 지적한다는 점에서 공감이 되었다. 문득 예전에 끄적였던 글 한 편이 생각났다. 생각보다 글이 잘 안 뽑혀서 묵혀두고 있었는데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적은 글이라 이번 기회에(?) 살짝 다듬어서 공개해본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 결혼해서 아이를 갖는다. 카톡이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에 갓난아이 얼굴들이 심심찮게 보인다. 언젠가 한 선배도 태어난지 얼마 안 되는 딸아이의 사진을 올렸는데 아기 눈이 참 크고 똘망똘망해 보였다. 선배에게 아기가 예쁘다며 칭찬을 했다. 평소에는 잘 안 웃던 선배가 ‘아빠미소’를 짓는 게 보기 좋았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대답을 들었다. 데면데면한 후배에게 칭찬을 들은 게 멋쩍어서 별 뜻 없이 덧붙인 말이겠지만, 아이 코가 좀 낮은 것 같아서 크면 고쳐줘야할 것 같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는 안 그래도 된다 웃어 넘겼지만 하루종일 불편한 기분이 떠나지 않았다. 농담이라고는 해도 태어난 지 백일도 안 된 아가의 성형수술 이야기를 한다는게 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성형수술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성형수술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여러가지 이유로 몸의 변화가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과거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만 지금은 외형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긴 것이다. 내가 불편하게 느낀 지점은 기회만 된다면 성형수술을 받는 것이 무조건 좋다는 듯이 여겨지는 분위기이다.

성형수술을 하면 어디를 제일 하고 싶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수술까지 받아가며 바꾸고 싶은 데는 없다고 했더니 외모에 그렇게 자신이 있느냐더라. 그냥 수술이 무서워서 그렇다고 에둘렀지만 진심으로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은 생각이 없을 뿐이다. 솔직히 나도 거울을 보고 있자면 못생긴 부분들이 눈에 띈다. 눈도 더 크고, 코도 더 오똑하고, 턱선도 더 갸름하게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며 투덜대기도 한다. 그러나 그 뿐이다. 지금 내 상태가 그렇게 싫지도 않고 한두군데 생김새가 바뀐다고 내 삶이 더 나아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도 않는다. 비용부담과 부작용 위험까지 감수해가며 굳이 수술을 받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너도나도 성형을 권하는 사회 속에서 ‘대세’를 거스르는 것에 대한 정신적 부담은 좀 느낀다. 바야흐로 성형수술이 대세인 시대이다. 강남역 일대를 지나다 보면 끝없이 이어지는 성형외과 광고로 어지러울 지경이다. 동그란 눈매에 볼록한 이마와 갸름한 턱선의 젊고 날씬한 여성들이 나를 내려다보는 시선에 압도된다. 마치 그런 얼굴을 하지 않은 나는 곧 도태되고 말 듯한 느낌에 겁을 집어먹게 된다.

강남미인도_원본_웹툰_마인드c_강남언니_1

마인드C 작가의 <강남미인도>. 이 작가에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많지만 이 그림에 나타낸 “미의 획일화” 만큼은 공감이 간다.

기형적으로 비대해진 대한민국의 성형 산업을 떠받치는 기조는 가히 “성형 만능주의”라 할 만하다. 사회구조적 문제조차 개인의 외모로 극복할 문제인 양 장사를 한다. 신문 기사와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는 외모가 변하면 인생이 변한다는 환상을 심어주며 버젓이 성형외과 광고를 하고 있다. 출산 후 못생겨졌다는 이유로 남편에게 폭언과 폭행을 당했다면 경찰서에 가야할까 성형외과에 가야할까. 그 아내는 경찰서 대신 성형수술을 시켜준다는 방송국을 찾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아무 생각 없이 아무에게나 성형을 권한다.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문제는 직접적 원인이 외모에 있지 않은데도. 자존감이 낮고 대인관계가 어려운 것이 정말 쌍커풀이 없는 탓일까. 코가 오똑해진다고 갑자기 없던 능력을 인정받을까. 성형 권하는 사회 속의 우리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대신 엉뚱한 곳에 화살을 돌린다. 외모 탓이라고. 별다른 문제 없이 잘 지내는 사람도 본인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 혹은 도태되지 않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는다. 수술을 받고 싶지 않다는 말은 오만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한다.

서로서로 성형 권유를 덕담인 양 건네는 세상이 되어버리긴 했지만, 아직 자기 생김새에 아무 생각조차 없을 갓난아이에게 어디어디를 고쳐주마하는 것은 아무래도 너무하다. 아이의 자존감에도 그다지 좋은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 아이가 그 말을 알아듣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자기가 못생겼다고 생각할 게 아닌가. 부모가 아이의 외모에 신경쓰는 것은 아마도 아이가 외모 때문에 위축되거나 비관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진실은, 어떻게 생긴 사람이든 한 사람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스스로를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도록 부모가 도울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조각같은 외모를 선물하는 것보다는 진심어린 응원을 해주는 게 아닐까. 한 연예인이 방송에서 성형수술을 못하게 한 대신 따뜻한 격려와 사랑의 말을 해준 어머니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타인에게 상냥한 사람은 이목구비가 조금쯤 촌스럽더라도 예뻐 보인다. 적어도 어린 아가들에게는, 그냥 존재 그대로, 손질할 생각같은 것 말고 듬뿍듬뿍 사랑만 주면 좋겠다. 그렇게 사랑으로 가득 찬 아이는 눈이 작거나 코가 낮거나 상관없이 예쁜 사람으로 자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