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천칭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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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천체의 운행과 내 운명이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쯤은 안다. 그런데도 무슨 잡지든 잡으면 일단 맨 뒷페이지를 넘겨 별자리 운세부터 확인한다. 그때마다 재빨리 내 생일에 해당하는 전갈자리 항목을 찾곤 했다, 지금까지는. 독특한 취향에 비밀이 많고 꽂힌 것에는 깊게 몰두하며 삶과 죽음의 아슬아슬한 경계를 달리는 신비로운 전갈자리. 내가 그렇게까지 강렬한 인간인가 갸우뚱하면서도 하긴 그런 면이 있는 것도 같다고 적당히 납득하고 지냈다. 그런데 나는 전갈이 아니었다. 세차운동 때문에 태양과 별자리의 상대적 위치는 조금씩 변하고, 급기야 내가 태어난 해의 내 생일날 태양은 전갈이 아닌 천칭자리에 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 이제부터는 조화와 편안함을 추구하며 사교적이고 심미안이 발달한 천칭자리다. 내가 그렇게 우아한 인간인가 의심스럽지만 또 그런 걸 좋아하긴 하는 것도 같다고 다시 납득했다.

잠깐, 그렇다면 여지껏 스스로 전갈형 인간인 줄 알았던 뭔가. 아무리 미신이라도 정체성의 혼란이 느껴졌다. 전갈과 천칭은 달라도 너무 다르니까. 하지만 곧 납득할만한 설명을 찾았다. 내 탄생시각에 달은 전갈자리에 있다. 점성술에서 태양은 스스로 드러내고자 하는 정체성을 의미하고 달은 내밀한 감정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점성학적으로 정체성은 천칭에 가깝지만 감정은 전갈을 닮은 사람인 것이다. 남들에게 잘 드러내지 않는 깊은 내면의 감정이 전갈이기에 그동안 전갈자리 묘사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깔끔한 설명인가! 하기사 사람은 누구나 평면적이고 전형적인 게 아니라 여러 성격 특성이 혼합된 입체적이고 복잡한 존재이니까.

이쯤되니 점성술에 흥미가 동했다. 꽂히는 건 파고들어야 직성이 풀리는 전갈로서 좀 더 깊게 알아봤다. 알고보니 생일로 보는 별자리 점은 점성술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었다. 출생 천궁도에서 봐야할 행성은 해와 달을 포함해 적어도 일곱개이다. 각 행성은 고유한 역할과 성격을 가지며 별자리라는 환경의 영향을 받아 다르게 행동한다. 워낙 방대한 상징체계라 세부사항보다는 전체 흐름을 파악해 일관성 있는 설명을 해내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즉, 출생 천궁도를 해석하는 일은 태양과 달, 그리고 행성들이 한 사람의 자아를 구성하는 캐릭터가 되어 펼치는 한 편의 이야기를 구성해내는 일종의 극적 창작인 셈이다.

알고보니 점성술은 단순히 사람을 열두개 범주로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의 서사를 풀어내는 것이었다. 천체의 운행을 재료로 한 사람의 기질과 운명의 드라마를 그려본다는 발상은 과연 낭만적이다. 텔레비전도 영화도 없던 아주 먼 옛날의 사람들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서로의 드라마 극장을 펼쳤을 것이다. 그러다 시시콜콜 자기만의 이야기까지 별들을 핑계삼아 술술 털어놓고는 서로 위로와 조언을 건네며 그렇게 밤이 깊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