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로사회

한국의 법정 노동시간은 분명 주 40시간인데, 추가근무 포함 52시간을 최대치로 해야한다고 했더니 언제부턴가 52시간이 기준인 듯해졌다. 급기야 이번엔 120시간 소리까지 나왔다. 총 노동시간이 같다고 하더라도 2주 동안 주 120시간씩 일하고 4주 동안 쉬는 것과 6주 동안 주 40시간씩 일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일이다. 사람이 한번에 할 수 있는 노동량에는 한계가 있고 그것을 넘어서면 몸이 고장난다. 쉬어서 회복되는 데에도 오래걸리고 회복된다는 보장도 없다. 더군다나 사람을 1주일에 120시간이나 일하게 만드는 고용주들이 직원들을 그렇게 오래 푹 쉬게 해줄 거라고 믿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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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동안 240시간 일하고 그 다음엔 놀면 된다니,
10층에서 1층까지 걸어서 내려갈 필요도 없고 그냥 뛰어내린 다음에 푹 쉬면 되겠다.

솔직히 나는 주 40시간 근무도 길다고 느낀다. 하루에 8시간 잔다고 하자. 하루 8시간 근무에 출근준비, 통근 시간 등까지 고려하고 나면 실제로 스스로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4시간이다. 그런데 나를 비롯한 1인가구 생활자는 모든 집안팎의 대소사를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장도 봐야하고 식사도 준비해야하고 청소도 해야하고 집세와 공과금도 때맞춰 내야하고 집안에 고장난 물건이 있으면 수리도 해야하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구해야 하고 자동차도 정기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취미생활은 커녕 생활에 꼭 필요한 일만 처리하는 데에도 종종 시간이 모자라다. 수면시간을 줄이거나 집안일과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 소홀해지게 된다. 어느 쪽이든 나의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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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를 맡아서 해줄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하루 1시간으로는 ‘정비’조차 불가능하지 않은가?

결국 주 40시간 근무 모델도 ‘가장’이 돈을 벌고 ‘주부’가 집안일을 도맡아하는 가부장적 정상가족 신화 속에서나 지속가능한 모델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한때 ‘정상’이라고 여겨졌던 그 가족 형태는 이제 여러가지 가족의 형태 중 하나일 뿐이다. 일인가구도 꾸준히 증가할 뿐더러, 결혼한 부부라도 맞벌이가 점점 늘고 있는 지금은 40시간 근무제조차 재고가 필요하다. 그런 마당에 52시간이 길다느니 짧다느니 입씨름하고 있는 상황이 씁쓸하다.

물론 누군가는 오래 일하고 급여를 많이 받는 쪽을 선호할 수도 있고, 근무시간을 법으로 제한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래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된다. 한국은 지나치게 오래 일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과로사회이기에 법적인 제한마저 필요해진 것임을 생각하자. 고용주들은 성과를 내기에는 제한된 근무시간이 너무 짧다고 불평하는 데에 힘을 쏟기보다는 불필요한 업무들을 없애고 비효율적인 업무체계를 개선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그러고도 업무가 넘쳐난다면 사람을 더 고용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 역시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