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수자는 생각보다 가까운 곳에 있다

2009년까지 나는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에게 성소수자란 어떤 전설의 동물처럼 느껴지는 존재였다. 세상에 있다고는 하는데, 주변에서 본 적은 없고 아무튼 나랑은 별로 상관없는 일 같았다. 성소수자라는 말도 몰랐고, 그저 ‘동성애’가 터부시된다는 것만 알았다. 동성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받으면 ‘동성애가 나쁜 건 아니죠, 그런데 내 근처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좀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라고 말하곤 했었다. 부끄럽게도 그때 나는 적어도 동성애를 ‘혐오’하지는 않는 꽤 쿨한 태도를 가졌다고 생각했었다. 사실은 그게 다 혐오였는데도.

그 해는 미국에 교환학생을 나온 해였다. 어느날 저녁에 학교 앞에서 손을 잡고 걷는 게이 커플의 뒷모습을 목격한 것이 실제 성소수자의 존재를 확인한 첫 경험이었다. 정말 손을 잡은 게 맞는지 다시 한 번 쳐다봤고 두 사람이 정말 모두 남자인가 다시 또 쳐다봤다. 전설의 동물이 실재하는 것을 확인한 순간부터 약간의 변화가 일어났던 것 같다. 스스로는 알지 못했던 어떤 미묘한 변화, 그것은 내가 더이상 ‘내 근처에 그런 사람이 있으면 부담스러울 것 같아요’라는 말을 함부로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어느날 저녁에 기숙사 로비를 지나다가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인사를 하려고 다가가니 모르는 아이들도 섞여 있었다. 다같이 어울려 한두시간 얘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다음날 아침에 그 중 하나를 마주쳤다. 자연스럽게 전날 저녁 이야기가 나왔고, 지난밤에 내가 처음 알게 된 어떤 남자아이가 거론되자 친구는 ‘알다시피 걔가 게이잖아-‘라고 운을 떼었다. 의외였다. 그 남자아이는 체형도 옷차림도 완전히 ‘상남자’인 아이였다. 전혀 게이일거라는 생각을 못했었다. 놀라는 내 표정을 본 친구가 당황했다. 몰랐냐며. 나는 ‘게이처럼 안 생겼던데…’라고 말하려다가 고쳐서 ‘게이라는 말은 못들었는데…’라고 대답했다. 다행히 그 아이가 동성애자라는 건 별로 비밀은 아니었던 모양이고, 사실 나는 그 아이와 다시 마주칠 기회도 없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일로 나는 성소수자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고 겉모습으로 구별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기숙사에서 삼인실을 썼는데, 한동안 둘 뿐이다가 여름이 지나자 마지막 룸메이트가 들어왔다. 네덜란드에서 온 밝고 활기찬 아이였다. 셋이서 밥도 먹고 산책도 하고 영화도 봤다. 그렇게 일주일정도 지났던가, 이야기 중에 새 룸메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아, 내가 호모섹슈얼인데-‘라는 말을 했다. 나와 원래 룸메는 다소 충격을 받았다, 새 룸메 앞에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지만. 성소수자가 바로 나와 한 방에서 지내고 있을거라고까지는 상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런데 충격이 좀 가시고 생각해봤더니 별로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었다. 새 룸메와 함께 보낸 며칠의 시간동안 이성애자 룸메이트랑 방을 쓰는 것과 다르게 느껴졌던 건 조금도 없었다. 원래 룸메는 며칠 고민하다가 결국 방을 옮겼지만 나는 그대로 있었다. 새 룸메가 딱히 나를 연애상대로 보는 게 아니다보니 별다른 거부감도 안 들었고, 무엇보다 다른 방의 룸메이트가 더 나은 사람일거라는 보장도 없었다. 그렇게 교환학생 기간동안 성소수자와 방을 쓰게 된 이야기에 흥미진진한 사건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별다른 갈등도 요란한 친한척도 없이 그저 서로의 생활패턴을 존중하고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잘 지냈다.

성소수자들을 실제로 만나고 같이 생활도 해봤지만 사실 나는 지금도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 아는 게 많지 않다. 그러나 2009년을 기점으로 달라진 점은 분명히 있다. 나는 이제 내가 무심코 하는 말들에 성소수자 혐오가 섞여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한다. 한국의 내 주변 사람들 중에도 사실은 성소수자가 제법 있을지도 몰랐다, 아직 드러내지 않았을 뿐.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친구들 중에 성소수자가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자연스레 조심스러워진다. 내가 무의식중에 사용하는 단어가 성소수자를 배척하고 있는 건 아닌지 점검해보게 된다. 나는 값진 교훈을 얻은 것이다. 세상에는 드러난 것보다 드러나지 않은 성소수자가 훨씬 많다는 것과, 나의 내면에도 의식하지 못해왔던 성소수자 혐오가 자리잡고 있었다는 것, 그리고 내 주변 성소수자의 존재를 알고 있을 때 내가 혐오를 중단하려는 노력을 훨씬 많이 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 서울에선 퀴어 퍼레이드가 열리고 있다. 직접 참여할 수는 없지만 간간이 보이는 기사와 소식들 속에 그 긍정적인 에너지를 느낀다. 세상에 흑과 백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무지갯빛이 가득하다는 것을 알리는 것이 고맙다. 내 경험에 비추어 생각하면 역시 성소수자들이 더 많이 모습을 드러내고 더 많이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필요하다. 어김없이 혐오를 정당화하며  소수자의 목소리를 억압하려는 시도들이 있지만, 성적 정체성이나 취향이 다른 이들 역시 당신이 사랑해야할 이웃이라는 것을 계속 일깨워주다 보면 혐오는 언젠가 도태될 것을 믿는다. 언제나 그래왔듯 사랑은 혐오보다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