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라도 되는 삶

아시아계 미국인 랩메이트와의 대화에서 넘을 수 없는 벽을 느꼈다. 필요한 서류를 다 갖추고도 공항에 세 시간을 잡혀있어본 적이 없는 사람, 입국심사가 길어지는 바람에 비행기 연결편을 놓쳐본 적 없는 사람, 유학비자 유지 조건이 무엇인지 신경써본 적 없는 사람, 유학비자 발급자체도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 졸업하더라도 취업비자 얻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앞으로 얼마나 더 어려워질지 생각도 안해본 사람, 갑자기 또 무슨 조치가 취해져 국제학회나 휴가를 갔다오는 길에 공항에 발이 묶이면 어쩌나 걱정해본 적 없는 사람, 어느날 길에서 백인우월주의자의 공격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느끼지 않는 사람과의 대화. 그런 일들을 바로 앞의 동료가 일상으로 겪고 있거나 곧 겪을 수도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

너희 대통령 때문에 이 나라 살기 점점 어려워질 것 같다는 나에게 “너한테는 아무 일도 없을텐데 무슨 걱정이냐” 란다. 나는 이미 실제 생활의 크고작은 문제들이 피부에 와닿기 시작했는데. 시민권자인데다 남캘리포니아를 벗어나 살아본 적이 없는 그 친구는 자기가 얼마나 든든한 제도적, 사회적 보호를 받고 있는지 모른다. 모르면 좀 가만히라도 있을 것이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내 걱정을 과대망상 취급하고 쉽게 웃어버리는 그 얼굴이 얄미웠다. “너 외국 살아봤냐”라고 쏘아붙이고 말았다. 더 설명할 의욕도 잃었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주인공이 이웃의 부잣집 여자아이를 고문하는 시늉을 하면서 노동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자아이가 “나는 몰랐어”라고 하자 “그게 너의 죄야”라며 풀어준다. 장면 설정에 손발이 오그라들긴 하지만 (…) 이 대화내용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었다. 그 전까진 한 번도 ‘모르는 것이 죄’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다른 이들은 삶을 유지하기 위해 꼭 알아야되는 것들을 ‘몰라도 되는’ 것 역시 힘이고 권력이다. 권력을 가진 자체를 죄라고까지 할 수야 없지만, 주변에서 끝없이 토해내는 불안과 고통을 사소한 것 취급하거나 외면해 버리고 모르는 상태에 편하게 머무는 것은 과연 무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