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설이

글로 쓰어지는 마음은 쉽게 풀어진다. 어쩌면 글로 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 이미 어지간히 풀어졌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꽁꽁 뭉쳐 엉켜있던 슬픔의 타래에서 비죽 나온 실마리를 잡고 살살 당겨본다.

판데믹 이후로 본가에 가지 못하고 보내던 이태 전 가을 어느 날, 서울은 갑자기 추워졌다고 한다. 우리집 강아지 백설이는 이미 노견이긴 했지만 대체로 건강했는데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 그 날 밤 이후로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다고 한다. 제 다리로 서지 못하고 힘없이 쓰러지더니 그 뒤로 다시 서지 못했다고 한다. 병원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고, 화장실도 스스로 갈 수 없어서 가족들이 한시도 곁을 떠나지 못한다는 소식을 엄마에게 듣고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불길한 예감에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고는 고작 일주일, 마음의 준비도 채 못했는데 백설이는 고작 일주일을 앓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마치 마지막까지도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싶은 듯 스스로 일어서려고 용을 쓰기도 하고 약도 잘 받아먹으며 조금 상태가 호전된 듯 보이더니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고요히 가버렸다고 한다.

새하얀 털이 보송보송 날리는 게 포슬한 첫눈으로 뭉친 덩어리같던 강아지 백설이. 걷는 것도 어설퍼서 산책이라도 나가면 계단이 무서워 내려가지도 못하던 솜뭉치가 눈깜짝할 새 자라서 나보다 날래게 뛰고 계단도 몇 개씩 겅중겅중 넘어다니던 발랄한 모습이 생생한데, 어떻게 그 아이가 더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며칠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았다. 강아지가 나를 가장 필요로 했을 시간 동안 그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게 아프고 미안했다. 그러나 시간은 무심해서 언제까지나 송곳처럼 찌를 것 같던 마음도 차차 무뎌져 어느새 백설이 생각에도 대책없이 눈물을 쏟기보단 흐린 웃음을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계절이 한 바퀴를 돌고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야 본가를 방문했다. 당연하게도 백설이의 흔적은 모두 치워져 있었지만, 집안 구석구석 백설이와의 추억이 없는 곳이 없어서 어디를 봐도 백설이가 떠올랐다. 가족들과는 수시로 백설이에 관한 농담을 했다. 백설이 있을 땐 바닥에 뭘 마음놓고 내려놓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느니, ‘산책’같은 단어도 강아지가 들을까봐 말하지 못했는데 이젠 양껏 말할 수 있어서 편하다느니. 물론, 그런 불편쯤이야 백설이를 보고싶은 마음에 비하면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낄낄대는 것으로 위로를 대신했다.

언젠가 강아지들은 무지개 다리를 건너서도 가족들을 기다리다가 반갑게 맞아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는 위안이 되면서도 동시에 마음이 아팠다. 평생동안 빈 집에서 가족들을 기다리는 데에 수없는 시간을 보냈을 백설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서도 또 기다리다니. 차라리 백설이는 우리를 기다리지 말고 그저 고통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고 재미나게 지내고 있다면 좋겠다. 다시 백설이를 찾아내는 건 내가 할 테니까, 설령 그 곳에선 나를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다시 처음부터 친해질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너는 기필코 나를 알아보겠지. 예전에 내가 처음으로 집을 오래 비웠다가 돌아갔을 때 잠시 나를 어색해하다가 불현듯 기억해내고는 반가워했던 그 때처럼. 내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몇 번 갸우뚱하다가 이내 전속력으로 달려오겠지. 커다란 두 귀는 뒤로 젖히고 입을 한껏 벌리고는 반짝이는 눈으로, 새하얀 발을 구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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