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절기

단지 연말이라 그런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에게 지금은 하나의 계절이 끝나고 다음 계절이 오는 시기라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하나의 큰 시련이 있던 건 아니지만, 목표했던 일들이 무엇 하나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당연히 잘 될 거라 믿었던 일들조차 실패로 돌아갔고 기대했던 사람들에 크게 실망하기도 했다. 이리저리 치이며 약해진 몸과 마음의 건강에도 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시든 가지를 잘라내면 곧 그 자리에 싱싱한 새 가지가 돋듯, 죽은 일이며 죽은 관계를 정리한 자리에 새로운 기회와 새로운 사람이 찾아오고 있음을 느낀다. 여전히 확실한 건 아무것도 없지만 어떻게든 잘 될거라는 확신이 든다. 막연히 운이 따를 거라는 낙관이라기보다는 지금의 나라면 조금쯤 예상 밖으로 흘러가는 일이나 설령 잘못되는 일이 있어도 대처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다, 생채기는 좀 났을 지언정 중심은 여전히 단단하다는 믿음이랄까.

차양을 걷고 창문을 연다. 창가의 화분들이 햇볕과 바람을 한껏 빨아들인다. 계절이나 환경이 변하면 이파리를 떨구기도 하고 몇몇 가지가 말라 죽기도 하지만 조금만 신경써주면 다시 살아나서 싱싱해지는 이 아이들이란 언제 봐도 대견하고 신기하다. 뿌리와 줄기가 건강하다면 얼마든지 새 가지를 뻗을 수 있다는 것은 식물들이 알려준 비밀이다.

지나가는 알러지 정도로 생각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더니 며칠만에 온 몸으로 두드러기가 퍼져버렸다. 그때서야 병원을 찾아 항생제와 스테로이드를 처방 받았다. 박테리아 감염이라고 했다. 이틀은 하루종일 잠만 자며 지냈다. 별다른 통증이 있지는 않은데 무엇에든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앉아서 화면의 글자를 읽으려고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다. 약을 먹기 시작한지 닷새가 지나서야 붓기가 가라앉았다. 그럭저럭 정상생활은 가능해진 것 같긴 한데 자주 쉬어야 한다. 반시간 넘게 집중하기가 버겁고 여전히 음식이 넘어가지를 않는다. 배가 고프다가도 입에 뭘 넣으면 속이 메슥거린다. 약을 먹기 위해 억지로 삼킨다. 평소의 절반도 못 먹는다.

그래도 몸은 곧 회복될 것이다. 앓는 동안 몸의 고통보다 더 싫었던 점은, 하루종일 누워만 있으니 생각이 많아져 자꾸만 부정적인 감정을 되새기게 되고 최악의 경우를 상상하게 되면서 마음의 고통이 자라나버렸다는 점이다. 몸을 조금 움직일만해지자마자 산책을 했다. 한시간도 채 못 걷고서는 지쳐 누워버리긴 했지만 정신은 한결 맑아졌다. 다음날은, 조금 고민이 되긴 했지만,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 나갔다. 웃고 떠드는 동안 무겁게만 느껴지던 근심이 한결 가벼워졌다.

정신력도 체력에서 나온다. 20대까지는 체력이 떨어지더라도 정신력이 강하면 몸을 쓸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건 정신건강이 약해질 정도로 체력이 부족한 적이 없었던 것 뿐이었나보다.

백설이

글로 쓰어지는 마음은 쉽게 풀어진다. 어쩌면 글로 쓸 준비가 되었다는 것이 이미 어지간히 풀어졌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꽁꽁 뭉쳐 엉켜있던 슬픔의 타래에서 비죽 나온 실마리를 잡고 살살 당겨본다.

판데믹 이후로 본가에 가지 못하고 보내던 이태 전 가을 어느 날, 서울은 갑자기 추워졌다고 한다. 우리집 강아지 백설이는 이미 노견이긴 했지만 대체로 건강했는데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 그 날 밤 이후로 급격히 상태가 나빠졌다고 한다. 제 다리로 서지 못하고 힘없이 쓰러지더니 그 뒤로 다시 서지 못했다고 한다. 병원에서도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했고, 화장실도 스스로 갈 수 없어서 가족들이 한시도 곁을 떠나지 못한다는 소식을 엄마에게 듣고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불길한 예감에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그러고는 고작 일주일, 마음의 준비도 채 못했는데 백설이는 고작 일주일을 앓고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마치 마지막까지도 가족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싶은 듯 스스로 일어서려고 용을 쓰기도 하고 약도 잘 받아먹으며 조금 상태가 호전된 듯 보이더니 아무도 보고 있지 않을 때 고요히 가버렸다고 한다.

새하얀 털이 보송보송 날리는 게 포슬한 첫눈으로 뭉친 덩어리같던 강아지 백설이. 걷는 것도 어설퍼서 산책이라도 나가면 계단이 무서워 내려가지도 못하던 솜뭉치가 눈깜짝할 새 자라서 나보다 날래게 뛰고 계단도 몇 개씩 겅중겅중 넘어다니던 발랄한 모습이 생생한데, 어떻게 그 아이가 더이상 이 세상에 없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며칠은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살다가도 갑자기 눈물이 왈칵 솟았다. 강아지가 나를 가장 필요로 했을 시간 동안 그 곁에 있어주지 못했다는 게 아프고 미안했다. 그러나 시간은 무심해서 언제까지나 송곳처럼 찌를 것 같던 마음도 차차 무뎌져 어느새 백설이 생각에도 대책없이 눈물을 쏟기보단 흐린 웃음을 웃을 수 있게 되었다. 계절이 한 바퀴를 돌고도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야 본가를 방문했다. 당연하게도 백설이의 흔적은 모두 치워져 있었지만, 집안 구석구석 백설이와의 추억이 없는 곳이 없어서 어디를 봐도 백설이가 떠올랐다. 가족들과는 수시로 백설이에 관한 농담을 했다. 백설이 있을 땐 바닥에 뭘 마음놓고 내려놓지도 못했는데 이제는 아무렇게나 해도 된다느니, ‘산책’같은 단어도 강아지가 들을까봐 말하지 못했는데 이젠 양껏 말할 수 있어서 편하다느니. 물론, 그런 불편쯤이야 백설이를 보고싶은 마음에 비하면 사소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그렇게 낄낄대는 것으로 위로를 대신했다.

언젠가 강아지들은 무지개 다리를 건너서도 가족들을 기다리다가 반갑게 맞아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는 위안이 되면서도 동시에 마음이 아팠다. 평생동안 빈 집에서 가족들을 기다리는 데에 수없는 시간을 보냈을 백설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너서도 또 기다리다니. 차라리 백설이는 우리를 기다리지 말고 그저 고통 없는 세상에서 행복하고 재미나게 지내고 있다면 좋겠다. 다시 백설이를 찾아내는 건 내가 할 테니까, 설령 그 곳에선 나를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다시 처음부터 친해질 수 있을테니까. 하지만 너는 기필코 나를 알아보겠지. 예전에 내가 처음으로 집을 오래 비웠다가 돌아갔을 때 잠시 나를 어색해하다가 불현듯 기억해내고는 반가워했던 그 때처럼. 내 목소리에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몇 번 갸우뚱하다가 이내 전속력으로 달려오겠지. 커다란 두 귀는 뒤로 젖히고 입을 한껏 벌리고는 반짝이는 눈으로, 새하얀 발을 구르면서.

며칠 앓았다. 특별히 앓아 눕지는 않았다. 먹은 게 잘못된 건지 뭔지 소화가 되지 않아 먹는 데에 지장이 좀 있었다. 일주일 남짓. 타고난 소화기관이 예민해서 소화불량에는 익숙한데, 어쩐지 이번에는 조금 더 유난스런 면이 있었다. 처음엔 고기를 먹으면 더부룩한 것 같더니, 언제부턴가 고기 아닌 걸 먹어도 더부룩하고, 제일 심해졌을 땐 쌀죽 반그릇을 먹고도 더부룩해 걷기도 버거웠다. 죽만 먹고 사흘을 보내고 나니 속은 훨씬 가벼워졌고 마침내 어제부터는 보통 식사를 넘길 수 있을만큼 호전되었다. 이제 살았다 싶으니 긴장이 풀렸는지 무섭게 잠이 쏟아졌다. 때가 지났다 싶던 생리도 시작됐다. 단순한 배앓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보단 더 아팠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상한 일이지만 앓고 나니 다시 읽고, 쓰고,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든다. 지난 몇 달간 도무지 읽거나 쓰거나 그리거나 하는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미 그 때부터 어딘가 고장나 있던 걸까. 축이 어긋난 채로 삐그덕 삐그덕 달리다가 결국 탈이 나버린 지도.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유난히 단 걸 좋아하셨다. 어느 명절, 사촌들과 먹으려고 열 두개 들이 도넛 두어 상자를 사들고 갔다. 할아버지께서 내 손에 들린 낯선 상자에 시선을 주며 뭘 사온거냐 물으셨다. 맛 한 번 보시라고 도넛 하나를 꺼내드리자 할아버지는 달기로 유명한 그 도넛을 양손으로 잡고는 가루가 떨어지는 게 신경쓰이시는지 얼굴을 살짝 찡그리셨다. 이런 걸 왜 사왔느냐 야단이라도 맞을까봐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한 입 베어무신 할아버지는 곧 눈을 반짝이며 주름진 얼굴 가득 웃음을 띠셨다, 소중한 것을 쥐듯 부드럽고 공손한 손으로 가슴께에 도넛을 들고. 그리 꼬장꼬장하신 양반이 그 순간 어찌나 천진한 미소를 지으시던지 벌써 십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 모습이 생생하다.

유학이 결정되고 얼마 후다. 다리를 다쳐 입원해 계신 할아버지께 병문안 겸 인사를 하러 갔다. 유학 소식을 전하기가 조금 걱정되었다. 워낙에 고지식하고 꼬장꼬장한 양반이라 ‘시집도 안 간 처녀가 혼자 무슨 유학이냐’며 역정이라도 내실지 몰라서였다. 어색한 자세로 할아버지 계신 침대 옆에 앉아 몇마디 병문안 인사를 나누었다. 할머니께서 내가 사들고 간 과일주스를 따서 손에 들려주시자 긴장이 좀 풀어졌다. 쭈뼛거리며 말을 꺼냈다. 할아버지 제가 미국에 가게 됐어요, 박사과정을 밟으러 가요. 할아버지는 잠시 놀란 표정이더니 이내 뛸듯이 기뻐하셨다. 박사 되는 공부라고? 야 그거 참 잘 되었다, 하하 니가 박사 되면 나는 박사 할애비 되는 거냐? 이야 하하하하 내가 박사 할애비가 다 되는구나. 그러면서 열심히 공부하라며 내 손을 힘껏 잡아주셨다. 그 예기치 못한 응원이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유학생활이 고되게 느껴질 때마다 우리 할아버지 ‘박사 할애비’ 만들어드려야한다는 생각을 하며 견뎠다는 걸 당신은 아실까.

마침내 대학원을 졸업한 해 가을, 한국에 갔다. 할아버지를 뵈러 가는 길에 아빠는 가게에서 할아버지 드릴 간식을 사자고 하셨다. 나는 무슨 선물을 구멍가게에서 사느냐며 베이커리라도 가야하지 않겠냐고 했다. 어차피 할아버지는 그런 걸 못 드실 거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동네 구멍가게에서 아빠가 이것저것 들려주는 것들을 손에 받았다. 부드러운 빵 몇 개, 아이스크림 바 열 개 남짓. 할아버지는 누운 몸을 일으키지도 못할만큼 쇠약해져 계셨는데, 치아도 몇 개 안 남은 양반이 내가 아이스크림을 꺼내자 몹시 반기셨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까서 손에 쥐어 드리니 누운 자세에서도 능숙하게 드셨다. 할아버지 제가 드디어 졸업을 했어요, 이제 할아버지 손녀가 박사예요. 아 니가 박사란 말이냐. 네, 할아버지께서 응원해주신 덕분에 끝까지 할 수 있었어요. 그래 야, 사람이 그렇게 말을 곱게 해야쓴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손으로 내 손을 쥔 할아버지 눈에 눈물이 고였다. 니가 박사란 말이냐 아이고 내가 박사 할애비란 말이냐, 고생했다 고생했어. 할아버지는 남은 아이스크림들을 무슨 보물단지처럼 쓰다듬으시며 할머니께 냉장고에 잘 보관했다가 하루에 하나씩 저녁 꼭 이 시각마다 꺼내달라고 하셨다.

열흘 정도 지나 미국으로 돌아오려던 바로 그 아침, 할아버지의 부음을 들었다. 급히 비행을 미루고 장례를 치렀다. 그 때 그 때 해야할 일들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 눈물 흘릴 시간도 거의 없었지만, 내가 영정 사진을 들기로 결정되자 네 품에 안겨서 가시려고 어제 가신 모양이라던 할머니 말씀에는 조금 울었다. 그 저녁에도 내가 가져간 아이스크림을 찾으셨다고 한다. 아이스크림 하나를 맛있게 잡숫고 잠드시고는 그 흐뭇한 모습 그대로 가신 거라고.

과로사회

한국의 법정 노동시간은 분명 주 40시간인데, 추가근무 포함 52시간을 최대치로 해야한다고 했더니 언제부턴가 52시간이 기준인 듯해졌다. 급기야 이번엔 120시간 소리까지 나왔다. 총 노동시간이 같다고 하더라도 2주 동안 주 120시간씩 일하고 4주 동안 쉬는 것과 6주 동안 주 40시간씩 일하는 것은 질적으로 다른 일이다. 사람이 한번에 할 수 있는 노동량에는 한계가 있고 그것을 넘어서면 몸이 고장난다. 쉬어서 회복되는 데에도 오래걸리고 회복된다는 보장도 없다. 더군다나 사람을 1주일에 120시간이나 일하게 만드는 고용주들이 직원들을 그렇게 오래 푹 쉬게 해줄 거라고 믿기도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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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 동안 240시간 일하고 그 다음엔 놀면 된다니,
10층에서 1층까지 걸어서 내려갈 필요도 없고 그냥 뛰어내린 다음에 푹 쉬면 되겠다.

솔직히 나는 주 40시간 근무도 길다고 느낀다. 하루에 8시간 잔다고 하자. 하루 8시간 근무에 출근준비, 통근 시간 등까지 고려하고 나면 실제로 스스로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고작 3-4시간이다. 그런데 나를 비롯한 1인가구 생활자는 모든 집안팎의 대소사를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 장도 봐야하고 식사도 준비해야하고 청소도 해야하고 집세와 공과금도 때맞춰 내야하고 집안에 고장난 물건이 있으면 수리도 해야하고 필요한 물건이 있으면 구해야 하고 자동차도 정기적으로 정비해야 한다. 취미생활은 커녕 생활에 꼭 필요한 일만 처리하는 데에도 종종 시간이 모자라다. 수면시간을 줄이거나 집안일과 스스로를 돌보는 일에 소홀해지게 된다. 어느 쪽이든 나의 삶의 질을 떨어트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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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를 맡아서 해줄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하루 1시간으로는 ‘정비’조차 불가능하지 않은가?

결국 주 40시간 근무 모델도 ‘가장’이 돈을 벌고 ‘주부’가 집안일을 도맡아하는 가부장적 정상가족 신화 속에서나 지속가능한 모델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한때 ‘정상’이라고 여겨졌던 그 가족 형태는 이제 여러가지 가족의 형태 중 하나일 뿐이다. 일인가구도 꾸준히 증가할 뿐더러, 결혼한 부부라도 맞벌이가 점점 늘고 있는 지금은 40시간 근무제조차 재고가 필요하다. 그런 마당에 52시간이 길다느니 짧다느니 입씨름하고 있는 상황이 씁쓸하다.

물론 누군가는 오래 일하고 급여를 많이 받는 쪽을 선호할 수도 있고, 근무시간을 법으로 제한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래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된다. 한국은 지나치게 오래 일하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과로사회이기에 법적인 제한마저 필요해진 것임을 생각하자. 고용주들은 성과를 내기에는 제한된 근무시간이 너무 짧다고 불평하는 데에 힘을 쏟기보다는 불필요한 업무들을 없애고 비효율적인 업무체계를 개선하는 데에 노력을 기울여야할 것이다. 그러고도 업무가 넘쳐난다면 사람을 더 고용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 역시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책] We Are the Weather (우리가 날씨다)

“안다는 것은 상처받는 것”이라고 한다. 한번도 시선을 준 적 없지만 언제나 그 곳에 있던 세계가 갑자기 인식되며 선악과를 삼킨 이브마냥 스스로의 허물을 갑자기 깨닫고 한없이 부끄러워지는 순간들이 있다. 때로는 책을 읽다가 예상치 못한 순간에 그런 치명상을 입는다. 아무런 악의 없이, 단지 늘 그래왔으니까, 습관적으로 하던 행동이 실은 스스로가 추구하는 가치에 반한다는 것을 알아 버린다. 이미 저지른 과오를 인정하기 싫어 저자의 주장을 반박할 근거를 찾아 몸부림치지만 내 얄팍한 사고의 헛점을 조목조목 파고드는 책 앞에 결국 항복한다. 앎으로써 상처입은 독자는 더이상 책을 읽기 전과 같은 사람으로 남아있을 수 없다. 상처를 회복하며 다른 사람 -바라건대 더 나은 사람-이 된다. Jonathan Safran Foer의 <We Are the Weather (우리가 날씨다)>는 내게 상처를 주는 책이었다. 책을 읽는 동안 스스로의 습관을 변호하려던 의식적, 무의식적인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갔고 책이 지적하는 바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표지에 적힌 “이 책은 삶을 변화시키는 책이며 당신과 음식의 관계를 영원히 바꿀 것이다”는 평에 고개를 끄덕였다.

We Are the Weather | Jonathan Safran Foer | Macmillan

이 책은 기후 변화를 줄이기 위해 개개인이 실천할 것을 호소하는 책이다. 저자는 ‘아는 것’과 ‘믿는 것’을 구별한다. 단순히 정보를 접하고 그것이 사실임을 인정하는 것이 ‘아는 것’이라면, (그로 인해 상처받고) 나아가 스스로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것이야말로 ‘믿는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인류의 활동으로 인해 심각한 기후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도 ‘알고’ , 부유한 국가의 생활수준에서 배출되는 탄소의 양은 지구가 감당 가능한 수준을 오래 전에 넘어섰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기후 변화를 줄이려면 개인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무슨 실천을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막연했다. 가령, 재활용을 열심히 하고 전기자동차를 타고 나무를 많이 심는 일들이 도움이 된다고 믿는 정도였다. 그런데 저자는 이러한 활동들이 단지 탄소배출량을 줄이는 기분을 낼 뿐이라고 한다. 물론 아무 실천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낫지만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보다 결정적이고 중요한 실천만은 정작 외면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나는 그 결정적으로 중요한 실천이 무엇인지 몰랐고 당연히 실천도 하지 않고 있었다. 나 자신이 습관적으로 기후 변화를 가속해온 사람이라는 사실이, 그리고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알면서도’ 무엇이 중요한 실천인지조차 여지껏 몰랐다는 점이 부끄러웠다. 기후 변화가 심각한 위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무엇을 해야하는지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믿지 않는’ 것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

If we accept a factual reality (that we are destroying the planet), but are unable to believe it, we are no better than those who deny the existence of human-caused climate change.

p. 23

그 실천이란 육식을 줄이는 것이다. 축산업이 탄소 배출량에 미치는 영향은 연구마다 추정치에 차이가 나지만, 축산업을 위해 불태운 삼림이 흡수하지 못하는 탄소의 양까지 감안하면 51 %까지 추정되기도 한다. 저자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정부 정책이나 기업 규제도 중요하지만 개개인의 식습관을 바꾸는 실천 없이 기후 변화로부터 지구를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역설한다. 대규모 축산업이 환경에 부정적이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책을 읽기 전에는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이 그렇게 큰 줄은 몰랐다. 단지 여러 요인 중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기를 즐기는 게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여겼다. 사람에겐 동물성 단백질이 필요하다며 합리화했다. 그러나 동물성 단백질이 몸에 필요한 만큼만 먹는 것이 아니라 입의 즐거움을 위해 그 이상 먹는다는 점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저기압일 땐 고기 앞으로”라는 말이 유행하던 것을 기억한다. 얼마나 재미있는 말인가.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 고기를 먹으며 스스로를 토닥이는 문화를 향유하는 일원으로서 웃었다. 하지만 책을 읽은 후엔 이 농담이 더이상 재미있지만은 않았다.

Changing how we eat will not be enough, on its own, to save the planet, but we cannot save the planet without changing how we eat.

p. 87

책에서 주로 비판하는 미국인들의 (어마어마한) 육식 습관에 비하면 나는 그렇게 고기를 많이 먹는 것도 아니라며 슬며시 변명해보기도 했다. 스스로가 기후변화 가속에 한 몫 하는 나쁜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상처받는 일이기에, 어떻게든 면죄부를 주고 싶었나보다. 그러나 곧 미국인들을 탓하며 나의 식습관을 바꾸지 않는다면, 거대 기업들을 탓하며 스스로의 삶을 변화시키지 않는 이들과 나는 본질적으로나 결과적으로나 마찬가지로 ‘믿지 않는’ 상태인 것을 알았다. 나 역시 필요 이상의 고기를 먹고 있다는 그 부정할 수 없는 진실 앞에 내가 지구에서 고기를 가장 많이 먹는 사람은 아니라는 사실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 중요하지도 않은 사실은 내 행동을 바꾸지 않을 핑계일 뿐이다. 육식이 기후변화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믿는다면’ 핑계를 댈 틈이 없다. 내가 할 일이 있을 것 같아 초조해지며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만큼의 실천이라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고서야 ‘아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를 실천으로 보는 저자의 관점이 오롯이 이해되었다. 아는 데서 그치고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숙연히 상처입고 스스로 변화하며 회복해 가거나, 선택은 독자의 몫이다. 나는 후자의 사람이 되고 싶다. 단지 식습관을 조금 바꾸는 것이 지구를 구하는 하나의 방법이라면, 실천하지 않을 이유도 없지 않은가.

Post script

하루에 육류 섭취를 한 끼로 제한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실천이라고 생각했다. 원래부터 매 끼 고기를 먹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막상 의식적으로 육식을 제한하려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나름의 노력과 적응이 필요한 일이었다. 처음 이틀 정도는 배가 고팠다. 별 생각 없이 육류를 넣어 먹곤 했던 점심에서 그 부분을 단순히 제하고 식사를 했더니 포만감이 현저히 줄어든 느낌이었다. 보상심리로 저녁엔 오히려 고기를 더 찾기도 했다. 그러나 변화는 꾸준히 일어나고 있었다. 식사에 육류가 포함이 되는지 아닌지 신경쓰게 되었고, 전에는 관심 없이 지나치던 비건 식단들을 유심히 보게 됐다. 한 주가 지나자 냉장고에는 채소가 많아지고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반찬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두 주가 지날 무렵엔 평생을 이렇게 살아온 것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생각보다 빠른 변화에 스스로도 놀랐다. 나는 여전히 고기를 먹지만, 확실히 전보다 적게 먹거니와 무엇보다 내 식사가 날씨에 미치는 영향을 의식하며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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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로 글을 쓰기가 갈수록 어렵다. 영어로 글쓰는 게 쉬워진 것도 아니다. 전반적인 글쓰기 능력은 거의 늘지 않는데 한국어 글쓰기를 오랫동안 멈췄더니 갈수록 무뎌지는 것 같다. 독후감을 한 편 써보자고 한참을 끙끙대다가 내가 쓴 문장들이 너무 싫어서 덮어버렸다. 단어들은 제 자리를 찾지 못해 어색하게 헤매고 문장들은 서로 손을 맞잡지 못해 따로 논다. 물흐르듯 글을 쓸 수 있었으면. 깊은 마음 속 조각난 말들을 길들여 가지런히 세우는 일은 왜 이리도 어려울까.

양파

양파를 썬다. 매운 놈으로 골라서.

무엇을 만들어도 좋다. 만들지 않아도 좋다.
채썰고 다지고 서걱서걱 칼을 놀리다가 왈칵
눈물을 쏟는다.

삶의 어느 모퉁이 막다른 골목에서
영문없이 두들겨 맞고도 눈물은 나지 않았다.
심장이 조여오고 목이 메어와도
인색한 눈은 끝내 눈물을 떨구지 않았다.

그럴 땐 양파를 썬다.
홀로 서러워 눈물도 막히면
양파를 붙잡고 서서 운다.